안국동 윤보선고택

안국동 윤보선고택

해위 윤보선(海葦 尹潽善: 1897~1990)
전 대통령(大統領)이 살았던 집이며, 한국 민족운동과 정당정치, 민주화 운동의 산실로 알려져 있다.

윤보선가는 안국동 8번지 한 곳에서 가옥형태를 유지하면서 오래 거주한 서울의 대표적 집안이다. 전통적인 양반 가문의 특징과 일찍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종교적 색채, 가문의 많은 사람들이 해외 유학을 경험한 덕택에 서양문화를 접하면서 개화된 집안분위기가 혼합된 윤보선가는 독특한 가문의 문화를 만들어 나갔다.

서울시 종로구 윤보선길62(안국동 8-1)에 위치한 윤보선 고택은 현재 사적 제 438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해위 윤보선(海葦 尹潽善: 1897~1990) 전 대통령(大統領)이 살았던 집이며, 한국 민족운동과 정당정치, 민주화 운동의 산실로 알려져 있다.

이 고택은 전형적인 조선후기의 양반 가옥의 형식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 집은 당시의 건축제한 규모인 99칸 집으로 지어졌다. 특별히 구한말 세도가의 위용과 건축양식 및 주거의 변천과정을 알 수 있어 건축문화사적인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고종 재위기인 1860년대에 건립되어 해위의 부친 치소(致昭)공이 1918년에 매입한 이후, 이 고택은 민족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국채보상운동의 귀결점인 ‘조선교육협회’, 곧 1920년에 이상재, 한규설, 유근 등 전국의 지도자 91명이 독립과 근대교육을 꿈꾸며 설립한 ‘조선교육협회’가 만들어진 곳이다.

민족자본가로 거대한 부()를 일구었던 윤치소공은 1918년에 교동에서 안동(安洞, 지금의 안국동 8-1)의 대저택으로 이사하였다. 이 집은 원래 여흥 민씨의 일족인 민영주(閔泳柱)가 지었다. 이후, 철종(哲宗)의 부마(駙馬)이며 개화파의 영수였던 박영효(朴泳孝)가 잠시 기거하기도 했다. 1918년 해위의 부친 윤씨 치소 (尹致昭: 1871~1944)공이 매입하여 그의 부친되는 영렬(英烈)공 부부와 함께 일족들이 대가족을 이루고 함께 생활했다.

윤치소 공이 이 저택을 구입하였던 이유 중 하나는 1912년부터 건너편에 위치한 안동교회에 출석하다가 장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안동교회는 기호학교(지금의 중앙중고등학교)를 설립한 유성준, 박승봉, 김창제 등 개화파들이 세운 장로교회였다. 당시 이들은 YMCA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모두 개화파로 기독교만이 한국의 미래를 구할 수 있다고 다짐했던 사람들이다. 애국운동의 바탕에 깊이 자리잡고 있던 교회였던 것이다. 안동교회 건물을 신축할 때 윤치소는 1천원을 헌금할 만큼 초창기 안동교회의 주요 인물이다. 『윤치호일기』에 따르면 윤치소는 안동교회 맞은 편에 있는 집을 1만 2천원에 구입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일제강점기 일가친척들의 보호막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큰 집을 샀다고도 전해진다.

사대부 출신들이 세운 안동교회는 성서적 교훈과 기독교 신앙을 근거로 하여 나라와 민족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강조했다. 치소 공은 교회의 이런 목적을 위해 자신을 집을 언제나 개방했다. 그래서 안국동 8번지는 기독교 민족운동의 요람이 되었다. 이런 일로 인해 고택 뒷 편에 위치한 종로경찰서는 언제나 이 집을 감시했다.

해방 후, 이 고택은 정치사에서 한국 최초의 민주정당, 곧 윤보선, 송진우, 김성수, 장덕수, 조병옥, 등이 참여했던, 한국민주당의 산실이 되었다. 1950년대 중반이후 1970년대 초까지는 해위 윤보선전대통령이 야당영수로 그리고 대통령후보로 활동할 때 야당 수뇌부의 회합장소가 되었다. 당시 야당 당사는 규모가 작고 회의실이 없어 이곳 사저에서 매일 회의를 열었던 것이다.

민주화 인사 모임 : 윤보선, 함석헌, 박형규 외

1960-70년대 군부독재로 서슬이 퍼렇던 시절, 윤보선 고택은 민주화 인사와 인권운동가들의 보호처요 도피처이기도 했다. 민주화운동 구속자 가족들의 만남의 장소로 우리나라 민주화 투쟁의 요람이다. 해위의 부인 공덕귀를 비롯한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이곳에서 민주화 세력의 석방을 호소했다. 1980년 ‘서울의 봄’ 때는 해위가 김영삼, 김대중씨에게 야당후보 단일화를 당부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산정채 앞 1980년 서울의 봄 후보 단일화 면담

윤보선 고택은 한국의 정치사나 건축문화사적인 면에서 큰 의의를 갖고 있지만 놀라운 것은 이 고택이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이 고택은 현시대에도 유연하게 대처하며 생동하고 있다. 안동교회가 주최하는 음악회의 장소가 되기도 하고 한옥과 우리문화 등 전통문화의 알림터가 되기도 한다.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 보전을 위한 만찬 행사 등 특별한 행사에 개방이 된다.


윤보선가의 사람들은 안국동 윤보선고택에서 일생의 모든 의식을 치렀다. 개인과 가족의 전 생애가 담긴 곳이 안국동 8번지이다. 윤보선 동생들과 조카 몇몇은 이곳에서 태어나, 백일과 돌을 지내고 성장해 안동교회 혹은 안국동 집 앞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나중에는 이 집에서 일생을 마쳤다.



윤보선 고택은 예전의 모습과 현대 생활에 어울리는 주택으로 남아 있으며 대저택의 품위와 위용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고택 안채에서 안동교회의 장로이며 윤보선 대통령의 장남인 윤상구씨 가족이 4대째 터전을 지켜가고 있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삼일대로 469, 7층 서원빌딩 (경운동 91-1) Tel: 02-735-0826 E-mail : admin@yunposu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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